밑줄

토마스 만 - 톨스토이

SINCE 2020. 12. 18. 00:08

세계대전이 광란의 춤을 추는 동안, 만일 1914년에 야스나야 폴랴나의 회색빛 형안을 지닌 노인이 눈을 활짝 뜨고 있었더라면, 전쟁은 감히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종종 생각했었다. 치기어린 생각이었을까? 아무튼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다. 그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와 같은 사람을 원하지도 않았다. 유럽의 고삐는 풀려버려서 중심점 없이 흔들렸으며, 오늘날까지 그러하다.

메레지코프스키는 톨스토이를 ‘영혼의 투시자’ 도스토 옙스키와 구분하여 ‘육체의 위대한 투시자’라고 칭했다. 실제로 톨스토이 예술의 건강함은 탄탄한 구체성Leiblichkeit에 근거해 있다. 심리학이 있는 곳에는 역시 병리적인 것이 이미 존재한다.

모든 지대에 사는 인류가 근본적으로 깊이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긴급하고도 불분명한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 바로 톨스토이라는 위대한 자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는 위대한 자란 “공적으로는 불행한 자”라는 우리의 귀를 수치스럽게 하는 격언을 가지고 중국의 민본주의 사상에 관해 토로한 바 있었다. 반면에 유럽의 본능은 언제나 뛰어난 인물을 미화하려 했었고, 지금도 그런 경향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 오늘날의 작가들은 톨스토이의 세대와 비교하면 자그만, 기껏해야 평균치의 세대에 불과하다. 만일 우리가 시대와 정신적 의무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톨스토이와 그의 민족에게서 지혜를 얻어 참으로 정의롭게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용서를 구할 수 없을 것이며, 적어도 비방과 질책과 어리석은 증오로부터 도피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 토마스 만, <톨스토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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