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9년 8월 19일, 과학자 도미니크 프랑수아 아라고는 국립과학 아카데미 총회 석상에서 다분히 의도적인 ‘다게레오타이프’ 추천 연설을 행한다. 정부를 설득한 그는 다게르와 니에프스의 아들이 고액의 종신연금을 받을 수 있게 했고 이 장치를 국가가 20만 프랑에 구입하게 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초창기 사진술의 발달이 일종의 정치적 사건이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는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게레오타이프’ 개발이라는 기술적 사건이 어떤 ‘문화’적 담론=디스쿠르discours의 절단면을 노정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